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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노천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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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노천탕
  • 전민일보
  • 승인 2015.01.05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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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무라 에미코 통역사

 
이번 겨울은 눈이 내리는 시기가 참으로 빨리 찾아왔다. 내가 사는 고창은 12월초부터 계속 눈으로 덮여 있다. 땅이 말랐던 것은 크리스마스 후의 일주일뿐이었고, 연말에 내리기 시작한 눈으로 또 다시 동네는 설국으로 돌아갔다.

이렇게까지 눈이 쌓이면, 장보기도 산책도 귀찮아져서 집에 가만히 있게 되어 버린다. 2월까지 약 3개월은 이 반설국(半雪國) 상태가 계속 되니까, 이러한 환경에서 즐길 수 있는 것을 찾으려고 궁리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 집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석정온천이라는 게르마늄온천이 있다. 가끔 가족과 함께 그곳에 목욕하러 가는데, 밖에는 작은 노천탕이 설치되어 있다.

12월초 딸과 함께 그곳에 갔을 때도 눈이 내리는 날이었다. 따뜻한 온천의 뜨거운 물에 어깨까지 푹 담고서 춤추는 듯 떨어지는 함박눈을 바라보았다. 이 정경은 마치 일본의 온천 관광용 포스터와 같지만, 실제 일본의 온천에 가도 이런 것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특히 내 고향은 밀감이 많이 나오는 따뜻한 지방이므로, 겨울철 눈이 그다지 많지 않다. 내리는 눈을 구경하면서 들어가는 노천온천, 그런 것은 일본에서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다.

또한 일본 온천과 한국 온천, 크게 다른 것이 하나 있다.

일본 온천에서는 사람들이 매우 조용하다. 동반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뉘기는 하지만, 서로에게만 들리는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한국의 노천온천에서는 사람들이 아주 큰 소리로 말한다. 그래서 여기에 오기만 하면 들으려고 하지 않아도, 귀에 여러가지 소문이 자꾸자꾸 들어온다.

눈이 오는 날, 노천온천에 들어가 있었던 사람들은 아름다운 설경에 왠지 마음이 들떠 있었다. 흥이 난 어떤 할머니가 트로트를 부르기 시작했다. 주변의 아줌마들은 노래에 맞춰 박수쳤다.

“산다는 것이 별것인가요? 인생은 별것인가요?” 정취 있는 할머니의 노래로 여탕의 노천온천은 한층 더 들뜨고, 모두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나중에 아들에게 들었는데, 그 날 역시 남탕 노천탕 쪽에서도 콧노래를 부르는 남자분이 있었다고 한다.

아무리 한국 사람이 오픈 마인드(open mind)라고 해도 사람이 가뜩 찬 온천에서 노래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내리고 있는 눈이 끌어낸 노래라고 생각한다.

눈이 내리는 날만이 가능했던 즐거운 해프닝, 나와 딸의 이번 겨울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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