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4-25 09:23 (목)
노인요양원 축구공
상태바
노인요양원 축구공
  • 전민일보
  • 승인 2014.12.26 11: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재선 한일장신대 인문학부 교수

 
학교 아래 노인요양원이 있다. 애초에는 온천을 겸한 숙박시설로 지었다가 외국어학원로 사용하더니 오랫동안 문을 닫았다 최근에 노인요양원으로 개원했다. 인조잔디로 된 축구구장까지 있어 상당히 규모가 크다. 요즘은 들릴 일이 별로 없지만 시간강의를 하던 때 연구실이 없고 마땅하게 시간을 때우기 곤란하여 자주 찾았다. 우선 주차할 공간이 넉넉하여 차에서 책을 보거나 시상을 정리하기 안성맞춤이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축구를 마친 사람들이 빠져 나간 자리에 축구공이 하나 외롭게 남아 있었다. 차속에 오래 앉아 있어 허리가 아팠던 터라 차에서 내려 축구공이 있는 골문 쪽으로 가 공을 발로 툭툭 건드렸다. 그런데 공은 바람이 빠지고 군데군데 헤져 정상적으로 찰 수 없는 상태였다. 바람 빠진 공처럼 김이 빠졌다가 불쑥 공에 대한 연민이 다가왔다. 바람이 제대로 들어 있고 새 공이라면 사람들에게 외면받고 버림받았을까.

“나무도 병이 드니 정자라도 쉴 이 없다/ 호화이 섰을 때는 올 이 갈 이 다 쉬더니/ 잎 지고 가지 꺾은 후는 새도 아니 앉는다.” 송강 정철이 쓴 시조다. 염량세태 (炎凉世態)를 나타낸 글이다.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상객이 많지만 정승이 죽으면 문상객이 별로 없다”는 말도 있다. 권세가 있을 때는 아첨하고 권세가 떨어지면 푸대접하는 세상 이치를 풍자하고 있다. 이 말이 사람한테만 관계된 것이 아니다.

요즘 유기견이 늘고 있다. 그래서 지방자치단체나 동물보호단체가 유기견보호소나 센터를 운영하고 유기견을 분양하고 있다. 애완견이 건강할 때는 가족 같이 생각하고 사랑하다 병들고 나이 들면 버리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버림받은 개가 용케 새 주인을 만나면 생명을 연장할 수 있지만 한 달 안에 새 주인을 만나지 못하면 안락사를 당한다. 그래서 유기견을 안락사 시키는 것에 대해 찬반양론이 뜨겁다.

사람이나 동물처럼 생명을 가진 것이 이런 대접을 받는 판에 불쑥 축구공을 꺼내는 것이 생뚱하게 들릴지 모른다. 축구공은 본시 사람들 발에 차이고 옆구리가 터지도록 밟힐 운명을 타고 났기 때문이다. 바람이 잘든 새 축구공은 많은 사람이 애용하기 마련이다. 우리 사람에게 빗대면 젊고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을 때는 많은 사람에게 사랑 받는다. 그러나 공이 바람이 빠지고 헤지면 볼품이 없을 뿐만 아니라 찰 수 없어 사람한테 버림받는다. 사람도 역시 나이 들어 바람 빠진 공 같이 되면 사회나 가정에서 소외당하기 일쑤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바람빠진 축구공을 예사로 볼 수 없었다. 그 축구공은 비록 사람들 발에 차여 온 몸에 있는 뼈가 부스러져도 바람이 충분하게 들어 있던 때를 그리워할지 모른다. 이 사람 저 사람 발길에 차여 공중으로 치솟아 현기증을 느끼며 구토를 하더라도 새공이었던 때가 더 좋았을지 모른다. 바람이 다 빠지고 가죽이 떨어져 나가자 아는 척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는 그렇게 버림받았던 것이다.

젊었을 때 자식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 온 어르신이 나이 들어 병들고 힘이 빠져 찬밥 신세가 된 세상이다. 특히 병든 어르신은 집에서 간호하기가 어려워 대다수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들어가 생활하고 있는 추세다.

노인요양원 축구장에 바람 빠지고 헤져 버림받은 축구공이 그토록 짠했던 것은 내 눈에 단순한 축구공으로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르신이 바람 빠진 축구공 대접을 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도록 사회구성원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신천지예수교 전주교회-전북혈액원, 생명나눔업무 협약식
  • '2024 WYTF 전국유소년태권왕대회'서 실버태권도팀 활약
  • 기미잡티레이저 대신 집에서 장희빈미안법으로 얼굴 잡티제거?
  • 군산 나포중 총동창회 화합 한마당 체육대회 성황
  • 이수민, 군산새만금국제마라톤 여자부 풀코스 3연패 도전
  • 대한행정사회, 유사직역 통폐합주장에 반박 성명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