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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보고 두물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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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보고 두물머리
  • 전민일보
  • 승인 2014.12.15 11: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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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선 한일장신대학교 인문학부 교수

 
두물머리는 일반적으로 두 강물이 머리를 맞대듯이 만나 하나가 되어 흐르는 곳을 말한다. 합수머리, 두머리, 이수두(二水頭), 양수두(兩水頭)라 부르기도 한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하나로 합쳐 한강으로 흐르는 지점을 일컫기도 한다. 그러나 두물머리가 이곳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사는 마을에 있는 화심소류지에서 흐른 물이 만덕산이 있는 신촌리에서 흘러나온 물줄기와 합쳐 흐른다. 이 물줄기는 다시 동상과 가까운 대승리에서 나온 물줄기와 화심순두부촌 뒤에서 다시 하나가 된다.

소양천을 제외한 대다수 지류하천은 건천이라 우기가 아니면 허옇게 말라 있다. 그런데 신촌리에서 흐르는 물은 물줄기를 드러내고 흐르다 화심리에 이르러 모래와 자갈에 몸을 숨긴다.

숨 가쁘게 달려온 것이 고단한 것인지 마을 사람들이 반대했는데도 거대하게 들어선 무인 모텔 건물을 보는 게 마음에 걸렸는지 알 수 없다. 아니면 투명한 몸이 화심리 도로변에 있는 돈사에서 나는 악취 때문에 더럽혀지는 것을 염려했는지 모른다.

물은 대승리에서 흐르는 물줄기와 합치는 곳에 이르러 제 모습을 전부 드러낸다. 이곳에서 갈대는 된서리가 내린 지 여러 날 되었지만 저마다 꽃을 다 매달았다. 더욱이 발이 시릴 만도 하지만 맑은 물속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초록빛까지 지키고 있다.

수많은 피라미떼는 온 몸을 툭툭 튀어 올리며 아침 햇살에 은은하게 빛난다. 이 빛은 갈대꽃과 어우러져 눈이 밝고 환하다. 밤새 식구들 먹잇감을 찾아 헤맸을 수고라니 한 마리가 목을 축이려고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부리나케 발을 움직인다.

자갈 구르는 소리가 청아하다. 강둑엔 노란 민들레꽃 두 송이가 아즘찬이 피어 있다. 감히 민들레에게 철모르고 피어난 것을 탓할 수 없었다. 두 물이 한 물이 된 두물머리가 빚은 생명이기 때문이다.

강이 많은 생명을 품고 있는 곳이 두물머리이듯 우리 사회도 서로 합치고 하나가 될 때 생명이 잘 자랄 수 있다. 인격을 끄집어내면 빨간 사람이 되고 민주를 발설하면 국가를 모욕한 것으로 정죄받던 어두운 시절이 있었다. 이런 시절 교련시간이나 체육시간에 교관이나 체육 교사는 이른바 ‘선착순 0명’이란 체벌을 즐겨 썼다.

선착순 몇 명안에 들어야만 뜀박질하는 고통을 줄일 수 있었기 때문에 동료를 배려할 겨를이 없었다. 배려는 고사하고 동료를 짓밟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교련시간을 없앤 지 오래되었고 체육시간에 ‘선착순 0명’이란 체벌을 하는 교사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마치 ‘선착순 0명’이란 체벌에 스스로를 최면 걸듯이 살고 있다.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보다 ‘나’와 ‘너‘를 분리하는 이분법에 인이 박혀 있다. 가정에서는 자녀가 2등을 해도 혼내고 학교에서는 답을 잘 찾는 학생으로 사육하고 사회에서는 일류대 출신만을 사람 취급하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우리는 각자 홀로 흐르는 강이 되어 외롭고 고독하게 흐르고 있다. 나보다 느리다는 이유로 나보다 더럽다는 이유로 나보다 낮은 곳에 있다는 이유로 두물머리가 되지 못했다.

우리도 이제 서로 합치고 하나가 되어 흐르는 두물머리가 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온갖 차별과 편견을 버리고 서로에게로 물들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생명의 보고가 될 수 있다. 생명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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