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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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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에서
  • 전민일보
  • 승인 2014.10.16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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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남 수필가

 
베란다 꽃밭을 손질하는 날은 영락없이 꽃 어미가 된다. 한 분 한 분 더듬으며 꽃나무의 상태를 살펴볼 땐 더욱 그렇다. 조곤조곤 말을 건네면 작고 예쁜 꽃 입술을 달싹이며 대꾸를 해 주는데 바삐 살다가 해놓은 것 없이 허전한 마음을 문득 위로받곤 한다.

겨울 동안 제자리를 지켜낸 꽃나무를 다듬어 줄 겸 주말의 한나절을 베란다에서 보냈다. 미처 손보지 못한 사이 뿌리가 당차게 들어찬 蘭화분은 집이 좁다고 난리다.

겨우내 꽃이 피고 씨앗을 내던 백화 해란초는 제 식구를 거나하게 거느리고 온 꽃밭을 정복하려는 듯 분마다 재금을 내놓았다. 그런가 하면 뿌리에 충실 하느라 잎을 갈무리 못한 벤저민, 치자나무, 백리향은 쑥대머리가 되었다.

삶의 등고선은 인간만 타는 줄 알았더니 생명이라고 식물도 겨울은 고난의 시기였던가보다. 베란다 창문을 열고는 고무장갑을 낀 채 나뭇잎을 턱턱쳤다. 물기를 댕기지 못한 조갈 든 잎은 떨어지고 목숨 줄을 잡은 몇 남은 나뭇잎은 기사회생했다.

집이 좁은 식물은 분갈이하고 화분의 흙을 돋워 채우고는 영양제를 꽃아 주었다. 제 흥에 겨워 남의 영역을 욕심껏 침범한 식물은 여지없이 솎아내 모두가 공평한 평화를 누리게 했다. 훨씬 말끔해진 꽃밭은 막 이발한 아이의 머리통처럼 약간 어색하나 단정하다.

창을 통해 들어 온 빼곡한 봄빛이 꽃나무의 젖은 몸을 더듬어 닦아주는 동안 내 마음이 다 안존해 진다. 무릇, 내가 꽃을 사랑하는 것 같지만 꽃이 나를 사랑하는지, 무언지 모를 무수한 것에서 에너지를 받을 때 그들의 인기척을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는데 거기엔 익숙한 사랑의 향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베란다 꽃밭을 손질할 때면 내 마음의 화단에 뿌리를 내린 가족의 터를 생각해 보게 된다. 어떻게 손질하고 사랑해야 하는지, 무엇을 놓고 거두어야 하는지, 꽃에서 배우는 것이다.

가족 간에 아름다운 화음을 내려면 화초를 다루듯 해야 할 일이다. 흙을 손질하고 뿌리를 다독이며 검불을 정리하는 정성이 소리 없이 묻어나야 사랑의 싹이 트는 것이다.

그래서 가정은 가꾸어간다고 하질 않던가. 손에 물기를 닦고 거실에 앉아 꽃밭과 눈 맞추자니 그들이 음이온을 집안 가득내 뿜어 놓았는가, 마음이 한없이 정화된다. 스스로 충만함을 꽃이 아닌 내가 느끼는 것은 어쩌면 꽃나무들의 화답일 터이다. 내 마음에 평화가 온 것은 내 가족들이 평화를 몰아다 주었기 때문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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