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3-29 23:09 (금)
“책을 통해 지난 삶 위로받고 행복 얻었어요”
상태바
“책을 통해 지난 삶 위로받고 행복 얻었어요”
  • 김병진 기자
  • 승인 2014.08.25 23: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2.큰나루작은도서관 사서 윤영옥씨
 

따분한 표정으로 안내 데스크에 앉아 바코드를 찍고, 연체된 사람에게 핀잔을 주고, 이따금씩 조용히 하라고 주의 주는 사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도서관 사서에 대한 이미지다. 하지만 ‘큰나루 작은도서관’만큼은 다르다. 도서관이 그 어느 곳보다 편안한 쉼터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애쓰는 이가 있다.

“사람들과 만나면서 세상의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주 덕진노인복지관 3층 큰나루 작은도서관에서 사서도우미로 일하시고 있는 윤영옥(여·77·전주시 진북동)씨. 윤씨는 지난 2009년 덕진노인복지관에 국내 처음으로 노인전용 도서관이 개관하면서 사서도우미 일을 시작했다.

말이 도우미지 하는 일은 도서 대출과 반납에서 서가정리, 필요한 책을 찾아주는 일까지 전문사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 도서관에는 25명의 사서도우미가 활동 중이다. 사서도우미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2~4명씩 나누어서 활동하고 있다. 윤씨는 “처음 사서도우미가 돼서 교육을 받을 때는 힘들고 어려웠어요. 특히 도서분류표를 익히는 일은 작은 글씨가 보이지 않아 쉽지 않았죠. 하지만 올해로 5년째 일하다 보니 8000권이 넘는 책 중에 어느 곳에 무슨 책이 있는지 단번에 찾을 수 있어요”라며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그녀는 30여년을 전업주부로 살아오면서 사회에 나가 일하는 친구들이 항상 부러웠었다. 6남매의 맏며느리로 시집가 시부모를 모셨고, 슬하에 3형제를 억척스럽게 키우며 꿈을 포기하고, 노년엔 손녀를 돌보며 인생을 살아왔다. 그러던 중 막내아들이 대학에 진학하고부턴 새로운 삶을 찾기 시작했다. 칠순을 넘긴 나이에 월요일엔 합창단, 화요일 식당배식봉사, 수요일 사서근무, 목요일 오카리나 등 일주일이 배움의 열정으로 가득 찼다.

특히 윤씨에게 독서는 배움을 중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지난날을 위로 받을 수 있는 매개체다. 윤씨는 “민중서관, 홍지서림 등 전주시내 서점은 문턱이 닳도록 들락날락 거리며 책을 구해 쌓아놓고 읽었다”며 “책을 통해 삶을 위로 받으며 몰랐던 지식도 다시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서도우미를 하면서 생활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집안 최고 어른으로 황소고집을 버리고, 무슨 일이든지 서로 대화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 윤씨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전해질 것이라 믿는 정서 때문인지 표현에 인색하다”며 “사랑해, 고마워를 항상 말하고 다니면서 식구들을 더 아끼게 됐다”고 말했다.

이밖에 윤씨는 도서관을 찾는 이들의 인생 상담자가 되어주기도 한다. “자식들을 출가시킨 어머니들이 가끔씩 오시는데 외로움을 많이 호소해요. 인생의 선배로, 친정엄마의 따뜻함으로 이야기를 들어주고 적절한 충고를 해주고 있죠. 또 일부러 시비라도 걸지 않으면 말동무가 없는 외로운 노인들을 상대하면서 그들의 안식처가 주려고 해요”라고 말했다.

윤씨가 일하는 곳은 글자 그대로 복지관 안의 ‘작은’도서관 이지만 하루 이용자는 80명 정도로 서가에 자리가 없을 정도다. 많을 때는 100명을 넘는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시립도서관이나 공공도서관은 문턱이 높고, 학생들이 많아서 시끄럽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에겐 갈 곳, 머무를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

5년째 ‘혼불’, ‘토지’, ‘장길산’ 등 대하소설은 도서관 최고 인기 서적이다. 윤씨는 노년의 독서에 대해 청나라 사람 ‘장석’이 쓴 ‘유몽영’의 구절을 인용해 “젊은 시절의 독서는 틈 사이로 달을 엿보는 것과 같고, 중년의 독서는 뜰 가운데서 달을 바라보는 것과 같으며, 노년의 독서는 누각 위에서 달을 구경하는 것과 같다”며 “노년의 독서는 천지 사방에 막힘없이 골고루 비치는 달빛을 볼 수 있는 것처럼 풍부한 경험과 지혜 때문에 책이 담고 있는 내용 이상을 느낄 수 있고, 전달하는 메시지보다 더 강렬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계획에 대해 윤씨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사서도우미를 계속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도서관이 주는 즐거움을 알리고, 인생의 행복함을 함께 나누는 일에 앞장서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병진기자
--


큰나루 작은도서관은?

 

전주시 덕진노인복지관 3층에 자리하고 있는 ‘큰나루 작은도서관’은 지난 2009년 8월 26일 개관했다. “조용히 앉아서 책 볼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공부도 명상도 할 수 있고, 여유 있게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복지관 이용객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관계기관 예산을 지원받아 만들어졌다.
국내 첫 노인전용 도서관으로 노인을 위한 돋보기와 안경 등이 구비해 놓고 문화·정보욕구 충족과 눈높이에 맞는 자료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 2010년부터는 지역 내 어르신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나 찾아와 책을 읽고, 빌릴 수 있다.
또 손자와 같이 온 노인들을 위해 아동열람실도 따로 마련해 놓고 있다. 방바닥으로 되어 있는데다가 온열도 돼, 누워서 쉴 수도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청년 김대중의 정신을 이어가는 한동훈
  • 신천지예수교 전주교회-전북혈액원, 생명나눔업무 협약식
  • 남경호 목사, 개신교 청년 위한 신앙 어록집 ‘영감톡’ 출간
  • 우진미술기행 '빅토르 바자렐리'·'미셸 들라크루아'
  • 옥천문화연구원, 순창군 금과면 일대 ‘지역미래유산답사’
  • 도, ‘JST 공유대학’ 운영 돌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