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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신탕을 먹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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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신탕을 먹지 않는 이유
  • 전민일보
  • 승인 2014.08.01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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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석주 청하중학교 교사

 
복날 즈음이면 수천만 마리의 개와 닭이 목숨을 잃는다. 올해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여름 보양식으로 왜 궂이 개와 닭일까? 더러는 동의보감을 인용해 말하고 더러는 문자풀이로 말하기도 한다. 삼복이라는 복(伏)자는 사람 인(人)변에 개 견(犬)을 붙인 바, 여름 삼복더위는 사람이 개를 잡아먹는 때라고 우기기도 한다.

어쨌거나 삼복을 넘기지 못한 어린영계와 개들을 위해 극락왕생기도를 한다, 살아남은 개와 닭들을 위해 감사 기도를 한다.

어릴 때 기억은 꽤 아득한 저편에 있지만 먼지를 털어내면 방금 건져올린 싱싱한 물고기처럼 파닥이며 떠오른다. 초등학교 때 닭을 잡는다고 한 손으로는 닭의 목을 조이고 한 손으로는 날개죽지를 잡고 낑낑거리며 물속에 쳐박을 때의 닭의 몸부림과 체온은 지금 내손에 남아 있다. 그리고 목을 누르고 있는 그 길고 긴 시간을 거쳐 나는 남자가 되었다.

닭을 잡을 수 있는 남자가 된 것이다. 얼마 전에 텔레비전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현장을 보여줬다. 가자지구가 잘 보이는 언덕에서 이스라엘 젊은 남녀 수십 명이 맥주를 마시면서 담배를 피우면서 망원경으로 포격현장을 보고 웃고 떠드는 장면이었다.

겹치는 장면-90년대 초반에 걸프전에 참가했던 미군 조종사는 바그다드를 폭격하는 장면을 보고 이렇게 흥분하며 탄식(?)하였다고 한다. “와~우, 정말 멋있는 불꽃놀이 같았습니다.”예전에는 칼과 창과 총으로 상대를 보며 전쟁을 하여 인간적인 고통와 아픔을 겪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모든 게 단추하나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게임처럼 전쟁을 하고 있다. 우리는 정말이지 피와 살이 튀는 장면을 보지 못한다. 우리는 정말이지 다친 자와 가족을 잃어 상처받은 자의 신음과 절규를 듣지 못한다. 우리는 정말이지 한 뼘도 안 되는 좁은 우리 안에서 항생제를 맞으며, 부리를 잘리며 몸을 불리는 닭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정말이지 좁은 우리 안에 갇혀서 죽을 날을 기다리는 개의 눈을 보지 못한다. 우리는 더 이상 타인의 아픔과 슬픔을 공감하지 못하고 하루하루 일용할 양식을 먹고 있다. 우리 사회가 모두 하얗게 표백되고 위생처리되었기 때문이다.

쌍용차노동자도 내 일 아니고 세월호도 내 일 아니고, 청년 실업도 유모차 끌며 폐지 줍는 노인들 문제도 내 일 아니다. 누군가 우리를 호명하여 내동댕이치고 죽음의 길로 인도하기 전까지는…. 하여

우리는 마음의 안녕을 꾀하며 치맥을 먹고 월드컵 중계를 보는 것이다. 잊혀진 기억과 잃어버린 마음을 위하여 시 한편 불러온다.

손을 내밀면 연하고 보드라운 혀로
손등이며 볼을 쓰윽, 쓱
핥아주며 간지럼을 태우던 흰둥이

보신탕 감으로 내다 팔아야겠다고
어머니가 앓아 누우신 아버지의
약봉지를 세던 밤

나는 아무도 몰래 대문을 열고 나가
흰둥이 목에 걸린 쇠줄을 풀어주고 말았다
어서 도망가라 멀리멀리

자꾸 뒤돌아보는 녀석을 향해
돌팔매질을 하며
아버지의 약값 때문에
밤새 가슴이 무거웠다

다음 날 아침 멀리멀리 달아났으리라 믿었던 흰둥이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와서
그날 따라 푸짐하게 나온 밥그릇을
바닥까지 달디달게 핥고 있는 걸 보았을 때

어린 나는 그예꾹 참고 있던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는데
흰둥이는 그런 나를
다만 젖은 눈빛으로 핥아주는 것이었다

개장수의 오토바이에 끌려가면서
쓰윽, 쓱 혀보다 더 축축이 젖은 눈빛으로
핥아주고만 있는 것이었다. 흰둥이 생각
손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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