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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화와 채송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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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화와 채송화
  • 전민일보
  • 승인 2014.06.27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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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미 전북문화관광해설사·행촌수필문학회장

 
“봉선화는 울 밑에 심어야 하는데”“울 밑, 맞잖아요?”조금도 망설이지 않는 내 대꾸에 남편이 피식 웃고 만다. 안방과 베란다의 경계인 창 밑에 놓인 화분이니 사실 순 억지만도 아니다.

주택에서 아파트로 옮긴 후 아쉬운 점 하나가 이런 작은 꽃들이 자유롭게 나고 자라는 모습의 한계를 보는 일이다. 한번 자리하면 씨앗을 거두거나 뿌리지 않아도 때 되면 저절로 나고 자라 고운 꽃피우던 봉선화와 채송화다. 생긴 대로 논다는 말같이 평균에 훨씬 못 미치는 내 체구와 내 생각의 그릇에 맞추듯 그런 꽃들을 난 좋아한다.

앞마당 작은 화단에는 각기 다른 화려한 장미와 탐스러운 모란, 여러 색상으로 피어나는 철쭉이 있었지만, 길가 담과 내 방 사이 작은 터에서 피고 지는 이런 작은 꽃들이 더 좋았다. 그것들은 특별히 가물지 않는 한 물 한 바가지 흡족히 주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씩씩하게 잘 자랐다.

바람에 날린 채송화 씨앗은 앞마당에 깔린 블록 사이사이에서도 싹을 틔워 어찌나 예쁜 꽃을 피워내던지,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하면서도 조금도 불편하지 않았다.

아파트에 와서는 그런 것들을 한동안 잊고 살았다. 정제된 화분에 심어진 걸맞은 나무와 꽃들은 계절에 상관없는 푸름을 자랑하고 꽃을 피우는 재롱을 부리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나 할까? 그렇게 몇 년을 지나는 동안 나이 탓인지 아주 어릴 때부터 눈에 익어 정겹고 젊은 시절 스스로 가꾸며 정들었던 그것들이 그리워 곁에 두고 싶은 생각이 절실해졌다.

그래서 받아온 씨앗들은 그러나, 서랍에 넣어두고 깜빡하는 새 계절이 지나버리거나 애써 뿌린 씨앗도 촉만 틔울 뿐 제대로 자라지를 않았다. 직사광선을 맞으며 자라야 하는 품종들이 두꺼운 유리문을 투과한 볕이나 촘촘한 방충망이 가로막는 볕을 애써 받는다고 해도 제대로 성장할 수가 없었으리라. 조금 자란 모종을 옮겨 심어도 결과는 비슷했다. 그럴수록 더 커지는 애착은 어떡하든 꼭 제대로 키워보고 말겠다는 집착으로 변할 정도로 커졌다.

올해는 쌀을 씻던 제법 큰 고무 함지박을 화분 삼아 밑에 구멍을 내고 나무 밑에서 손수 긁어온 부식토를 넉넉하게 담았다. 그 위에 뿌린 씨앗에서 봉선화와 분꽃은 차츰 제 모습을 찾아가는데 채송화는 여전히 오종종한 모습을 벗지 못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아침저녁 들여다보고 창 가까이 내놓아도 그대로였다.

그 무렵 찾았던 한 사찰 마당에서 빼곡하니 자라고 있는 채송화를 보았다. 뽑을 만큼 뽑아가라는 비구니스님이 어찌나 고맙던지, 조심스레 뽑은 튼실한 몇 포기를 정성스레 심었더니 줄기 끝 암팡진 봉우리에서 매일 매일 한두어 송이 앙증스런 꽃송이를 피워낸다.

창 바로 밑에는 봉선화를, 베란다 창 아래에는 분꽃과 채송화를 놓고 집에 있을 때는 때때로 방충 창까지 열어 볕을 들인다. 시원한 물줄기 하나 칙-하며 뿌려질 것 같이 탱탱한 봉선화 줄기와 채송화 진자리에는 부서진 보석조각 같은 까만 씨앗이 가득하다.

고맙고 고마운, 예쁘고 정다운, 그 꽃들 옆에서 봉선화와 채송화가 들어가는 노래는 아는 대로 흥얼댄다. 이 정도면 주택의 화단을 그리워할 게 뭐 있으랴. 나팔꽃도 한 번 심어봐? 욕심을 내 보지만 지나치면 화가 되는 것을.

같은 사무실에서 일했던 다문화가정의 한 통역사가 생각난다. 더할 수 없이 싹싹하고 일도 성실히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일도 가정도 놓은 채 아무말도 없이 떠나고 말았다. 짐작이나 사실로 떠도는 말은 많았지만, 원인은 뿌리내리기 힘든 다른 환경에 대한 부적응이었으리라. 뉘 하나라도 그녀의 어려움을 진정으로 들어주고 고민을 함께했다면 그 자리에서 야무진 우리 사람으로 거듭나있지 않았을까.

떠나고 바로는 내게 이따금 소식을 전하더니 이내 끊겨버렸다. 두고 간 아이는 이제 중학생이 되었다고 한다. 어딘가 안착한 그곳은 자양분 가득하고 제대로 숨 쉬며 성장할 수 있는 곳인지 궁금하다. 아마 그러리라 믿고 싶다.

우리 집 봉선화와 채송화 곱게 피어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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