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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학도병 참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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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학도병 참전기
  • 김종준 기자
  • 승인 2014.06.24 15: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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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근 대한민국 6·25 참전유공자회 군산지회장

 

광난한 북괴군은 남침을 했다. 남한에는 보초 이외엔 한참 잠들어 있을 때 1950년 6월 25일 새벽4시 중화기와 탱크로 중무장한 북괴군이 38도선 240㎞를 넘어 남침해 3년 1개월 2일 동안 전 국토의 80%를 잿더미로 포격하여 고요한 아침의 나라 대한민국을 불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이 때 필자는 이리공고 1학년 재학 중인 사회 물정 모르는 19세의 소년이었다. 1953년 7월 10일 아침, 학교에 갔더니 나라가 북괴군의 남침으로 위태로워 너희들도 입대해 국방의무를 해야 하겠다는 담임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집에 와보니 군입대 소집 통지서가 도착해 있었다.

통지서에 의거 1953년 7월 14일 10시 입대 장소인 군산중앙국민학교에 집합했다. 그 때의 심정은 정말 무덤덤했다. 줄지어 서라는 기관병의 말에 따랐다. 얼굴색이 검은 대위가 연단에 올라 첫 마디 “지금부터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이 권총이 용서치 않을 것이다. 하라는 대로 해라.” 그 말끝에 권총은 세 발의 총성을 하늘로 울렸다. 이것이 명령이었다.

그 후 집합자 전원은 군산역으로 가서 기차(화물차)에 몸을 실었다. 이리 농림학교에 도착하니 저녁 6시경이었다. 주먹밥 한 덩어리 배급받아 먹고 교실 바닥에서 잠자라는 명령에 그대로 따랐다. 밤 11시경 운동장 집합 명령이 내려졌다. 이어 걸어서 행군이 시작돼 다음날 아침 6시경 전주역에 도착했다.

보행으로 인한 신체상의 고통은 말할 수 없었다. 그 후 계속 기차로 혹은 자동차로 대부분 보행이었다. 1953년 7월에는 유난히 비가 많이 왔다. 식사는 밤낮없이 길가에서 부인들이 주먹밥 한 개씩 주면 비를 맞아가며 먹으면서 계속 행군했다. 팔다리는 말할 수 없이 피곤했다. 이유도 모르는 강행군이었다. (후에 알고 보니 북괴군이 대전까지 침입해 계속 남침하고 있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최후에 도착한 곳은 대구 어느 방직공장이었다. 이때에 남한은 북괴군에 점령당하고 대구, 부산만 남아 있었다. 필자 일행은 대구 방직공장에서 3일 훈련받고 바로 다부동(기계, 안강) 전투에 참전했다. 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받았으나 실탄사격(M1소총) 7발로 군 훈련을 마치고 17연대에 배속 받았다.

1953년 8월 6일 새벽 2시 출동명령이 떨어졌다. 완전무장하고 전지에 출동했다. 당일 암호는 자동차, 구루마였다. 이날 다부동 전투에서 학도병들은 몸을 던져 처절하게 싸워 사체가 산을 이루고 피가 강물처럼 흘린 최악의 전투지였다.

시간이 지나 인천 상륙작전을 계기로 ‘53년 10월 1일 38선을 넘어 압록강 초산에 도착했다. 이것이 우리 군이 처음으로 38선을 돌파한 날이다. 이를 기념으로 매년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정했다. 또한 단장의 미아리고개는 9.28수복당시 가족끼리 생이별하는 처참한 참옥함을 담은 노래로써 지금도 우리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있다.

우리 부대가 북진을 하던 중 어느 날 밤(10월 하순경) 북쪽에서 나팔소리, 피리소리, 꽹과리소리가 들려와 전쟁터에 무슨 사물놀이인가 했더니 중공군이 인해전술로 물밀듯이 남침해 낮에는 UN군의 공습 때문에 산 속에 숨어있고 밤에는 마음 놓고 피리불고, 꽹과리 치고 아군의 정신을 혼동시키는 전술로 또다시 남침했다.

그러나 우리군은 흔들리지 않고 UN군과 같이 일심동체 되어 혼신의 노력으로 국토전선을 방어해 현재는 휴전이란 38°선을 한계로 국경을 쳐놓고 있다. 목숨을 바쳐 이 참혹한 전쟁의 역사를 우리 후손들은 잊지 말고 똑똑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지난 2008년 7월 11일의 금강산 피격사건, 2010년 8월 26일의 천안함 피격사건, 2011년 11월 23일의 연평도 포격사건 등 북괴의 만행을 우리는 똑똑하게 피부로 느끼고 있으면서 3대 세습 독재공산체제를 옹호하는 종북세력들을 단호히 규탄하고 어떠한 도발에도 대처할 수 있는 안보의식을 굳건히 갖추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이 세계 강국의 대열을 갖추게 된 것은 이름도 없고 기억도 없이 나라를 위해 사라져간 호국영령들의 희생의 값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 몸도, 저 몸도 ‘나라위해 바친 몸’과는 비교될 수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 6․25참전유공자회 군산지회장 남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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