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4-20 15:24 (토)
꽃이 되고 신(神)이 되고
상태바
꽃이 되고 신(神)이 되고
  • 전민일보
  • 승인 2014.05.30 11: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용미 전북문화관광해설사·행촌수필문학회장

 
꽃으로 피어났다. 구름으로 내려앉았다. 누가 길바닥에 널려 있어 흔한 것이 돌이라 했던가. 누가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라고 했던가. 돌이되 돌이 아닌, 신이면서 꽃이고, 꽃인가 하면 구름이고, 구름인가 하면 비천상이 되기도 한다.

강원도 양양의 폐사지에서 정교하게 깎고 다듬은 탑비와 부도에 한껏 높아진 눈이지만, 솜씨 서툰 아낙의 뭉텅수제비 뜬 것 같이 아무렇게나 툭툭 찍고 도려내서 그 형상만 나타낸 내 고장의 동물 형상들도 정겹다.

한 마을에서 신으로 받드는 돌 거북상이 짓는 미소는 포대 화상의 천진난만한 웃음은 아니다. 모나리자의 야릇한 미소도 아니다. 그래도 웃고 있음이 분명한 사람얼굴에 거북의 몸을 가진 영험하신 몸이다. 아니 귀하신 몸이다. 그 귀하신 몸 어느 날인가 보쌈당해 사라진 후 애면글면 마을 사람들 정성으로 다시 만들어진 마을의 보배다.

아직도 겨릅대 섞은 황토를 이기어 바른 벽이 보인다. 낮은 대문과 담장 밑엔 옛 엄마들 손길 그대로 수수한 봉선화와 채송화, 검붉은 떡 맨드라미가 당당하다. 소박한 시골새댁 발그레한 볼 같은 분꽃이 배시시 웃고 있다.

이런 평화로움을 시샘한 것이었을까. 아주 오래전 초가지붕 옹기종기 머리를 맞대며 살던 시절 수시로 일던 불길은 삽시간에 온 마을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뉘 집에서 낸 불인지 따질 일도 아니었다. 따져본들 너나없이 없어져버린 살림에 윗집 형님, 아랫집 동생인 것을…….

앞에 보이는 삐죽한 봉우리를 탓했다. 그렇다고 높다란 산봉우리를 뽑아낼 것인가, 묻어버릴 것인가. 생각해 낸 것이, ‘중이 절이 싫으면 떠나면 된다.’듯, 그 봉우리를 마을에서 보지 않고 봉우리가 마을을 볼 수 없게 하는 방법으로 나무를 심었다. 띠를 두르듯 마을 앞에 갖가지 나무를 심었다. 그래도 불길은 멈추지 않았다. 나무보다 강한 것, 나무와 곁들여 더 강한 힘을 내는 것은 무엇일까.

용일까? 아니면 호랑이일까? 아니다. 거북이였다. 천년을 산다는 거북이의 고향은 바다, 불길을 뿜는 봉우리를 향해 거북이를 앉혔다. 뿜는 불길 입으로 소화시키고 엉덩이로는 알과 황금을 뿜어내기 바랐다.

마을로 향한 토실한 엉덩이 덕이었을까. 불길은 잠잠해지고 마을은 조용해졌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거북이가 없어졌다. 그 영험하고 고마우신 물의 신이 사라지다니. 찾기도 힘들지만 그보다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이 문제였다. 훤하게 신작로가 뚫리고 초가집이 헐리고, 단단해도 보드랍던 마을 흙길은 딱딱한 시멘트로 덮여버렸다.

나무를 때던 어수선한 부엌이 없어지고 스위치 하나 눌러 밥을 하고, 방을 덥히는 기계가 있는데 그깟 거북이가 무슨 소용인가. 그 누구도 사라져버린 거북이를 그리워하거나 아쉬워하지 않는 세월이 한동안 흘렀다.

유행은 돌고 도는 것. 그 유행처럼 옛것을 그리워하는 마음들이 빠른 속도로 이 마을 저 마을로 퍼지기 시작했다. 그때 다시 거북이 생각이 났다. 불을 막기 위해 세우던 절실한 마음은 아니지만 무언가 가지고도 허한 마음에 위로가 필요했다. 기왕이면 예전에 있던 생김새의 거북이 모양으로 세워보자는 의견이 모아지자 “목에 주름이 많았어.”“ 웃는 눈이 꼭 돌쇠할아버지 닮았었지?”“입은 합죽하니 꽃순이 할매와 똑 같았지 아마?”“ 얼굴이 딱 짱구아배 같았어.” 한마디씩 거들었지만 닮았다는 그 사람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옛날 같이 석수장이를 데려다 이렇게 저렇게 주문하며 간섭을 할 수도 없었다. 발달한 기계는 그전의 사람솜씨보다 훨씬 나은 거북이상을 만들어 내놓을 거라 믿으며 공장에서 돌아올 거북이를 기다렸다. 그러나 돌아온 거북이에게서 예전의 모습이란 어디에도 없었다.

우선 눈에 익어 친근한 희끄무레하고 우둘투둘한 모습이 아니라 매끌매끌한 하얀 돌은 약아빠진 도시인의 모습이었다. 이건 아닌데? 고개를 저어보지만 어쩔 것인가. 밀가루 반죽이라고 다시 치대 만들 수도 없고, 첫눈에 반하기가 어디 쉽다던가. 세워놓고 밤낮으로 바라보면 서서히 드는 정이 더 도타울 수도 있겠지. 그렇게 그 자리에 세워졌다.

그랬다. 가만히 오래도록 보고 있으면 그 옛날의 돌쇠 할아버지 눈이, 꽃순이 할매의 입이, 짱구 아배 얼굴이 언뜻언뜻 보였다. 아니 자꾸 자꾸 쳐다보니 똑같아 보였다. 친근하고 그리운 모습들이 고스란히 모여 있다. 말로는“이젠 저 세상으로 가야지, 가야지”하면서도 맘으론 이 세상에 더 오래 남고 싶은 내동댁과 탄곡댁, 바우할 배가 웃고 있는 거북이의 얼굴을 무심히 쳐다보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신천지예수교 전주교회-전북혈액원, 생명나눔업무 협약식
  • '2024 WYTF 전국유소년태권왕대회'서 실버태권도팀 활약
  • 이수민, 군산새만금국제마라톤 여자부 풀코스 3연패 도전
  • ㈜제이케이코스메틱, 글로벌 B2B 플랫폼 알리바바닷컴과 글로벌 진출 협력계약 체결
  • 맥주집창업 프랜차이즈 '치마이생', 체인점 창업비용 지원 프로모션 진행
  • 스마트365잎새삼, 스마트팜을 통해 3년간 확정 임대료 보장